곽은지 Kwak Eunji, 박시월 Park Siwol, 임은경 Lim Eunkyung

켜켜이 쌓인 굴절된 이미지

2021. 8. 27 – 9. 12

곽은지 Kwak Eunji, 박시월 Park Siwol, 임은경 Lim Eunkyung

켜켜이 쌓인 굴절된 이미지

2021. 8. 27 – 9. 12

그 어떤의 신진작가 기획전 <켜켜히 쌓인 굴절된 이미지> 전은 작가의 기억속에 퇴적된 기억의 흐릿한 장면들이 각각의 상징적 시각 이미지로 발현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미지들은 뚜렷한 형태를 지니기도 하지만 때로는 심하게 왜곡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명쾌하게 문자의 형태로 기록되기 어려운 이미지의 조각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다양한 언어적 해적을 낳고 있고, 각자 다른 기억과 해석습관을 가지고 있는 관람자의 감가에 작품의 해석을 맡기고 있다.

이번 <켜켜히 쌓인, 굴절된 이미지> 전은 세 명의 작가, 곽은지, 박시월, 임은경 작가가 참여한 신진작가 지원프로그램이다. 근래 지역에서 선보였던 전시들 속에서 참신한 기획력과 시각적 공력이 돋보이는 전시로 보였고 작품 또한 개념과 재료를 다루는 밀도가 깊은 전시였다. 전시는 명제처럼 쌓인 시간의 흔적과 시각에 대한 다름을 고민하는 흔적들

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르익지 않았지만 늘 보았던 시각을 철폐하고 어떤 다른 특이점을 발견하려는 노정은 늘 우리를 일깨우고 강렬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정신분석학을 창시하면서 인간의 삶에 대한 빛과 소망이 아니라 패스트와 같이 껄끄럽고 불안한 전혀 새로운 골칫거리가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라깡은 한술 더

선의지로 무장한 도덕주체의 계몽적 윤리 대신 사드적 도착과 향유에 대한 맹목적 의지가 정신분석 윤리의 방향이라고 선포한다. 인간이 숨기고 말하기 싫어하는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의식을 부끄럽게 만드는 추악한 무의식을 무대화시킨다. 정신분석은 우리의 단순한 욕망의 들춰내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참된 현실에 도달하기 위해 삶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대면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연구체가 그러하듯 늘 우리를 정신을 깨우듯이 어떤 본성이라고 봐왔던 관성을 뒤집어 놓는 전시와 예술작품들이 눈에 각인되는 이유이다. 이번 <켜켜이 쌓인, 굴절된 이미지>전이 보여주려는 의미들 중 어떤 경계에 닿아 쌓여야 볼 수 있고 어떤 면에 굴절 되어야만 보이는 또 다른 ‘미시적인 세계’를 드러내는 소기의 전시 성과이다. <중략>

평론 김 복 수

Artist Statement

곽은지 Kwak Eunji

이번 작업은 시각에 의존해 대상을 판단하는 것과 모든 것을 압축된 언어로 치환해 개념을 정해버리는 것에 연민을 느껴서 시작되었다. 언어화될 수 없는 지점은 개념화되지 못해 눈에 읽히는 정보가 되지 못한다. 시각과 언어는 매우 강력한 감각이고 신뢰를 가졌지만 모든 것을 납작한 종이의 한 면으로 보게 만든다는 의심이 들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이 숨을 내뿜고, 진동하고 변화하며 그림자를 드리우는 입체적인 존재임을 망각하게 만든다. 최근에 본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구절이 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보기를 갈망한다. Seeing is believing. We long to see things.” 이 구절은 마치 시각이 우리의 사고 과정 중 증명을 담당하는 것 같았다. 다른 어떤 감각으로 체험하고 논리로 입증하더라도 시각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이상 실재하지 못한다. 어떤 현상이 언어화되는 과정도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되지 못하는 것은 무형의 기억으로만 남고, 기억을 누군가에게 전달하지 못하면 투명해진다. 움직이는 과정 속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도 결과를 만나기 전까지 스스로를 증명할 길이 없어 투명해진다.

투명한 존재는 시각으로 읽히지 않아 감각으로만 떠다니지만 동시에 분명히 누른 자리를 만든다. 차가운 유리에 가닿는 따뜻한 숨결이 만들어내는 입김은 피어났다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결국엔 사라지지만 공기 속에 실재한다는 것을 알듯이, 에어컨에 차가워진 팔 위로 얹어진 따뜻한 손가락 체온에 온기를 바라던 온몸의 세포가 집중하는 감각을 시각으로 전달하진 못하지만 분명히 내 몸이 느끼듯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도 실재하는 순간들을 감각하고 인지할 수 있다. 증명할 방법이 없어 투명해지는 존재들에게도 중력과 부피를 만들어주고 색감을 입혀, 휘발되지 않고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존재로 발견되게 해 주고 싶다. 화면에서 물감들이 중력을 받아 흘러내리는 물성을 갖도록, 움직임의 궤적이 붓질에서 운동감으로 느껴지도록, 겹쳐지는 얇은 색감의 레이어들이 공간을 입체적으로 느끼도록 매만지는 이유다.

박시월 Park Siwol

‘네가 본 아름다운 것을 훔치고 싶었다’ 라는 이름의 시리즈 작업은 당신과 나의 인생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순간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사람은 퇴적암과 같아 지나온 시간이 쌓여 지금이 만들어진다. 사람은 무엇을 보고, 쌓여 지금에 이르렀는지. 어떤 순간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는지 시간을 거슬러 지워지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을 찾는 것으로 작업이 출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이 본 순간 중 가장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기억으로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와 도축장면을 꼽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작업들을 다루었다. 인터뷰 대상이 이러한 위태롭고 불안한 소재에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에 관한 서사를 지우고 해체하여 키워드만 가지고 왔다.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명확한 사고의 현장과 일방향적 수요에 초점이 맞춰진 살생은 사건화 되지 않고 정적으로 무마되는 비인격체의 죽음을 조명해보고자 했다. “너의 죽음을 걸어 두었다‘’는 날개가 달린 것들이지만 땅에 납작하게 눌려 죽은 새의 형상을 모았고, ‘행복한 미소를 띄는’ 은 도축의 표식을 몸에 얹은 가축의 모습을 담았다.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는 로드킬(교통사고)의 피해의 현장이지만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고, 그저 아무 일이 아닌 상태로 분해되는 상황을 사건의 현장으로 규정하고자 했다.
질문으로 얻어진 각자의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는 순간을 해석하여 만들어낸 이미지를 유리라는 회화의 지지체 안에 눌러 넣는다. 유리는 자신이 뜨겁고 유연했던 물컹한 액체 시절의 기억을 결정의 구조로 간직하고 있다. 높은 온도의 액체에서 경화되는 시간이 너무 짧아 분자가 미처 결합하지 못한 탓이다. 차갑게 굳어가던 순간의 모습과 시간을 투명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 투명한 물질은 굳어진 뒤에도 액체상태의 구조가 유지되며 그 안에서의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도록 잡아 두고 있다. 태생적으로 찰나를 가두고 부식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이 모습이 회화와 매우 닮았다. 지나가는 시간을 민첩하게 포착하여 평면의 공간에서 늘 지금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그렇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다뤄진 죽음이라는 키워드에 맞추어 유리는 모두 깨진 파편의 형태로 가공해 사용했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어딘가 어긋난 부분을 유리의 깨진 파편형태로 언급하기 위한 선택이다.
타인으로 하여금, 그들의 시간과 무엇을 보고 기억하는지 따라가다 보면 질문은 되려 작가 자신에게 돌아온다. 작가가 스스로 집중해 바라본 것과 함께 타인의 경험을 빌어 세상을 만나고 그들이 쥐어 준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고민한다. 타인의 시선에 자신의 경험을 덧대어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동시대의 모습을 교차 확인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대상을 추적하고 재해석하는 것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임은경 Lim Eunkyung

나의 작업은 비판적이지만 휴머니즘이 전제되어 있고 외피에 대한 서술보단 심리와 감정에 천착하고 있다. 거개의 작품에서 우리가 무엇을 자각해야 하는지, 우리가 걷는 이 길이 과연 올바른 길인지 되묻는 자신만의 발언과 의제가 드러나고 사회, 정치적인 내용에서부터 흔하게 겪는 일상에서 조차 그 알고리즘을 찾아내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드로잉작업은 앞서 말한 작업의 내용들을 은유적으로 조금 더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드로잉 작업의 과정을 보여준다. 비정형적이거나 각자 다른 상황들의 이미지들을 꼴라주 표현방식으로 구현하거나 누가 봐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을 사물의 모습들이 조금 다른 상황표현으로 묘사되거나 숨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는 신체의 일부분을 나의 감정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드로잉이 곧 나를 표현하며. 드로잉이라는 매개체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회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자유롭게 이야기 풀어 낼 수 있는 도구이다.

최근 전시작에서는 평소의 작업에선 그리는 대상이나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문제의식을  끄집어내는지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임했다면, 이번 <그 밤에 너는 뭐 했니?> 에서는 코로나-19라는 위험한 전염병이 돌고 있는 상황으로 인한 부수적인 문제의식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문제들이 이미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각인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몇 달 간 세상은 멈췄고, 모든 사람들 힘들어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생활했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전시 작품에선 유희적이고 재밌는 사고를 할 수 있는 작품을 관람하는 동시 답답함 마음을 내려놓기를 강조하고, 지금 같은 우울한 상황에서 나만의 소소하게 극복하는 방법을 이번 전시 주제를 잡아 작업을 해보았다. 2020년은 한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적인 생활들이 멈추고, 비대면의 생활 속에 답답하고, 삶에 대해 희망보다는 우울감이 밀러 올 때, 내가 집에서 했던 혼자 놀이와 평소에 혼자서 자주 하는 일상적인 행동과 패턴들을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자유분방한 방법으로 해소하고 표현 해 보았다.

그 어떤의 신진작가 기획전 <켜켜히 쌓인 굴절된 이미지> 전은 작가의 기억속에 퇴적된 기억의 흐릿한 장면들이 각각의 상징적 시각 이미지로 발현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미지들은 뚜렷한 형태를 지니기도 하지만 때로는 심하게 왜곡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명쾌하게 문자의 형태로 기록되기 어려운 이미지의 조각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다양한 언어적 해적을 낳고 있고, 각자 다른 기억과 해석습관을 가지고 있는 관람자의 감가에 작품의 해석을 맡기고 있다.

이번 <켜켜히 쌓인, 굴절된 이미지> 전은 세 명의 작가, 곽은지, 박시월, 임은경 작가가 참여한 신진작가 지원프로그램이다. 근래 지역에서 선보였던 전시들 속에서 참신한 기획력과 시각적 공력이 돋보이는 전시로 보였고 작품 또한 개념과 재료를 다루는 밀도가 깊은 전시였다. 전시는 명제처럼 쌓인 시간의 흔적과 시각에 대한 다름을 고민하는 흔적들

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르익지 않았지만 늘 보았던 시각을 철폐하고 어떤 다른 특이점을 발견하려는 노정은 늘 우리를 일깨우고 강렬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정신분석학을 창시하면서 인간의 삶에 대한 빛과 소망이 아니라 패스트와 같이 껄끄럽고 불안한 전혀 새로운 골칫거리가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라깡은 한술 더

선의지로 무장한 도덕주체의 계몽적 윤리 대신 사드적 도착과 향유에 대한 맹목적 의지가 정신분석 윤리의 방향이라고 선포한다. 인간이 숨기고 말하기 싫어하는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의식을 부끄럽게 만드는 추악한 무의식을 무대화시킨다. 정신분석은 우리의 단순한 욕망의 들춰내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참된 현실에 도달하기 위해 삶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대면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연구체가 그러하듯 늘 우리를 정신을 깨우듯이 어떤 본성이라고 봐왔던 관성을 뒤집어 놓는 전시와 예술작품들이 눈에 각인되는 이유이다. 이번 <켜켜이 쌓인, 굴절된 이미지>전이 보여주려는 의미들 중 어떤 경계에 닿아 쌓여야 볼 수 있고 어떤 면에 굴절 되어야만 보이는 또 다른 ‘미시적인 세계’를 드러내는 소기의 전시 성과이다. <중략>

평론 김 복 수

Artist Statement

곽은지 Kwak Eunji

이번 작업은 시각에 의존해 대상을 판단하는 것과 모든 것을 압축된 언어로 치환해 개념을 정해버리는 것에 연민을 느껴서 시작되었다. 언어화될 수 없는 지점은 개념화되지 못해 눈에 읽히는 정보가 되지 못한다. 시각과 언어는 매우 강력한 감각이고 신뢰를 가졌지만 모든 것을 납작한 종이의 한 면으로 보게 만든다는 의심이 들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이 숨을 내뿜고, 진동하고 변화하며 그림자를 드리우는 입체적인 존재임을 망각하게 만든다. 최근에 본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구절이 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보기를 갈망한다. Seeing is believing. We long to see things.” 이 구절은 마치 시각이 우리의 사고 과정 중 증명을 담당하는 것 같았다. 다른 어떤 감각으로 체험하고 논리로 입증하더라도 시각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이상 실재하지 못한다. 어떤 현상이 언어화되는 과정도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되지 못하는 것은 무형의 기억으로만 남고, 기억을 누군가에게 전달하지 못하면 투명해진다. 움직이는 과정 속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도 결과를 만나기 전까지 스스로를 증명할 길이 없어 투명해진다.

투명한 존재는 시각으로 읽히지 않아 감각으로만 떠다니지만 동시에 분명히 누른 자리를 만든다. 차가운 유리에 가닿는 따뜻한 숨결이 만들어내는 입김은 피어났다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결국엔 사라지지만 공기 속에 실재한다는 것을 알듯이, 에어컨에 차가워진 팔 위로 얹어진 따뜻한 손가락 체온에 온기를 바라던 온몸의 세포가 집중하는 감각을 시각으로 전달하진 못하지만 분명히 내 몸이 느끼듯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도 실재하는 순간들을 감각하고 인지할 수 있다. 증명할 방법이 없어 투명해지는 존재들에게도 중력과 부피를 만들어주고 색감을 입혀, 휘발되지 않고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존재로 발견되게 해 주고 싶다. 화면에서 물감들이 중력을 받아 흘러내리는 물성을 갖도록, 움직임의 궤적이 붓질에서 운동감으로 느껴지도록, 겹쳐지는 얇은 색감의 레이어들이 공간을 입체적으로 느끼도록 매만지는 이유다.

박시월 Park Siwol

‘네가 본 아름다운 것을 훔치고 싶었다’ 라는 이름의 시리즈 작업은 당신과 나의 인생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순간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사람은 퇴적암과 같아 지나온 시간이 쌓여 지금이 만들어진다. 사람은 무엇을 보고, 쌓여 지금에 이르렀는지. 어떤 순간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는지 시간을 거슬러 지워지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을 찾는 것으로 작업이 출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이 본 순간 중 가장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기억으로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와 도축장면을 꼽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작업들을 다루었다. 인터뷰 대상이 이러한 위태롭고 불안한 소재에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에 관한 서사를 지우고 해체하여 키워드만 가지고 왔다.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명확한 사고의 현장과 일방향적 수요에 초점이 맞춰진 살생은 사건화 되지 않고 정적으로 무마되는 비인격체의 죽음을 조명해보고자 했다. “너의 죽음을 걸어 두었다‘’는 날개가 달린 것들이지만 땅에 납작하게 눌려 죽은 새의 형상을 모았고, ‘행복한 미소를 띄는’ 은 도축의 표식을 몸에 얹은 가축의 모습을 담았다.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는 로드킬(교통사고)의 피해의 현장이지만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고, 그저 아무 일이 아닌 상태로 분해되는 상황을 사건의 현장으로 규정하고자 했다.
질문으로 얻어진 각자의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는 순간을 해석하여 만들어낸 이미지를 유리라는 회화의 지지체 안에 눌러 넣는다. 유리는 자신이 뜨겁고 유연했던 물컹한 액체 시절의 기억을 결정의 구조로 간직하고 있다. 높은 온도의 액체에서 경화되는 시간이 너무 짧아 분자가 미처 결합하지 못한 탓이다. 차갑게 굳어가던 순간의 모습과 시간을 투명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 투명한 물질은 굳어진 뒤에도 액체상태의 구조가 유지되며 그 안에서의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도록 잡아 두고 있다. 태생적으로 찰나를 가두고 부식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이 모습이 회화와 매우 닮았다. 지나가는 시간을 민첩하게 포착하여 평면의 공간에서 늘 지금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그렇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다뤄진 죽음이라는 키워드에 맞추어 유리는 모두 깨진 파편의 형태로 가공해 사용했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어딘가 어긋난 부분을 유리의 깨진 파편형태로 언급하기 위한 선택이다.
타인으로 하여금, 그들의 시간과 무엇을 보고 기억하는지 따라가다 보면 질문은 되려 작가 자신에게 돌아온다. 작가가 스스로 집중해 바라본 것과 함께 타인의 경험을 빌어 세상을 만나고 그들이 쥐어 준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고민한다. 타인의 시선에 자신의 경험을 덧대어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동시대의 모습을 교차 확인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대상을 추적하고 재해석하는 것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임은경 Lim Eunkyung

나의 작업은 비판적이지만 휴머니즘이 전제되어 있고 외피에 대한 서술보단 심리와 감정에 천착하고 있다. 거개의 작품에서 우리가 무엇을 자각해야 하는지, 우리가 걷는 이 길이 과연 올바른 길인지 되묻는 자신만의 발언과 의제가 드러나고 사회, 정치적인 내용에서부터 흔하게 겪는 일상에서 조차 그 알고리즘을 찾아내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드로잉작업은 앞서 말한 작업의 내용들을 은유적으로 조금 더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드로잉 작업의 과정을 보여준다. 비정형적이거나 각자 다른 상황들의 이미지들을 꼴라주 표현방식으로 구현하거나 누가 봐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을 사물의 모습들이 조금 다른 상황표현으로 묘사되거나 숨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는 신체의 일부분을 나의 감정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드로잉이 곧 나를 표현하며. 드로잉이라는 매개체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회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자유롭게 이야기 풀어 낼 수 있는 도구이다.

최근 전시작에서는 평소의 작업에선 그리는 대상이나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문제의식을  끄집어내는지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임했다면, 이번 <그 밤에 너는 뭐 했니?> 에서는 코로나-19라는 위험한 전염병이 돌고 있는 상황으로 인한 부수적인 문제의식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문제들이 이미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각인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몇 달 간 세상은 멈췄고, 모든 사람들 힘들어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생활했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전시 작품에선 유희적이고 재밌는 사고를 할 수 있는 작품을 관람하는 동시 답답함 마음을 내려놓기를 강조하고, 지금 같은 우울한 상황에서 나만의 소소하게 극복하는 방법을 이번 전시 주제를 잡아 작업을 해보았다. 2020년은 한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적인 생활들이 멈추고, 비대면의 생활 속에 답답하고, 삶에 대해 희망보다는 우울감이 밀러 올 때, 내가 집에서 했던 혼자 놀이와 평소에 혼자서 자주 하는 일상적인 행동과 패턴들을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자유분방한 방법으로 해소하고 표현 해 보았다.

Artist

곽은지 Kwak Eunji

박시월 Park Siwol

임은경 Lim Eun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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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월 Park Siwol

임은경 Lim Eunkyung